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반 2세 (문단 편집) == 생애 == [[킵차크 칸국]]의 노가이 칸에 의해 차르로 추대된 [[스밀레츠]]와 [[미하일 8세]] 황제의 이복형제인 세바스토크라토르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의 딸 스밀체나(Smiltsena)[* '스밀레츠의 부인'이란 뜻이다. 본명은 전해지지 않는다.]의 아들이다. 1298년 부친이 죽자 이반 2세[* 이전 [[불가리아 제1제국]]의 [[이반 블라디슬라프]]를 이반 1세로 보고 그 넘버링을 이어서]라는 이름으로 차르로 즉위하였다. 스밀체나는 전 차르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의 형제인 알디미르를 [[데스포티스]]로 세우고 그의 협력을 받아 왕권을 다지려 하였으며, 세르비아 왕 [[스테판 우로시 2세 밀루틴]]에게 자신과 결혼하여 세르비아-불가리아 연맹체를 결성하고, 아들을 공동 차르로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왕은 장래에 불가리아의 손에 세르비아를 맡기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1299년, 노가이 칸이 토크타 칸과의 전쟁 도중 전사했다. 이후 노가이 칸의 아들인 [[차카(불가리아 제2제국)|차카]]가 부친의 잔존 세력을 이끌고 킵차크 칸국에 볼모로 와 있던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의 아들 [[토도르 스베토슬라프]]와 함께 불가리아로 향했다. 스밀체나와 이반 2세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수도 타르노보를 내준 뒤 알다미르의 영역으로 도주했다. 1305년 스밀체나는 동로마 제국의 협력을 받아내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찾아갔지만, 같은 해 알디미르가 토도르 스베토슬라프에게 복속하면서 차르로 복귀할 가망이 없어졌다. 그 후 이반 2세는 요안니스 콤니노스 두카스 앙겔로스 브라나스 팔레올로고스라는 이름으로 지냈으며, 죽기 직전에 요세프라는 이름으로 수도자가 되었다. 1330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분류:불가리아 차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